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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, 이야기.

코로나 블루에 걸린 친구에게.

by 희네 2021. 1. 11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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코로나 블루에 걸린 친구에게.

 

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는 언제 나왔을까?

단어만 딱 봐도 뜻을 알 수 있는, 정말 직관적인 단어다.

 

이 단어를 나는 내 친구의 입에서 가장 먼저 들었다.

그리고 바로 그 친구가 앓고 있는 증상이기도 했다.

 

그 친구는 삶의 활력을 여행에서 얻는 사람이었다.

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여행도 짧은 시간을 내서라도 갈 수 있으면 갔다오는, 그런 열정이 가득했다.

제주도에 귤 따러 가자고 당일치기를 요청하는 행동력까지도 갖췄다.

 

집에 있으면 가만히 있는 적이 없었다.

청소를, 빨래를, 운동을.

그 무엇이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.

 

하지만, 코로나가 터진지 벌써 1년.

세계는 펜데믹으로 접어들은지 오래고 한국의 K-방역도 자꾸만 뚫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.

게다가 이번 겨울에는 북극 한파까지 덮치다니.

 

오늘,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.

별 이야기는 아니었다. 사실, 평소에도 별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.

일생일대의 고민이 새해 첫날 다이어트를 결심했는데 크루와상이 먹고싶다.

뭐, 이런 얘기 정도?

 

"야, 나 죽겠어. 세탁기가 얼어서 2시간을 씨름했다."

 

로 시작한 전화.

 

집을 일주일 비웠었다.

요즘은 운동할 곳이 없어서 시 외곽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지냈다.

그 곳에나 가야 겨우 운동이라도 할 수 있다.

세탁기가 얼었는데 온수로 돌리래서 돌려도 녹질 않는다.

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2시간이나 놔둬야 했었다.

빨래를 계속 넣었다 뺐다 힘들어 죽겠다.

(아니 그러길래 왜 통돌이를 샀니, 친구야...)

 

"심심해 죽겠다고 했더니 이런 사고도 터지네. 재밌어 죽겠다, 아주."

 

재밌다고 말하지만 전혀 재미있지 않은 말투였다.

그건 그렇지. 누가 2시간 쌩고생을 했는데 진심으로 즐거울까.

 

웃으면서 말하지만 나는 내 친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고 있었다.

원래도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편이긴 했어도 그때의 심심하다는 지금의 심심하다와 품고있는 무게가 달랐다.

 

코로나 블루가 온 친구는 심각한 고민을 했다.

고민은 대부분 쓸데없는 주제였고, 심해지면 반사회적 성향을 띄기도 했다.

그냥 미쳐가는 중인 것만 같았다.

 

"나는 집순이, 집돌이가 너무 부러워."

 

요즘 뭐 재밌는거 없냐는 질문에 "난 숨만 쉬어도 재밌던데." 라고 대답하는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부럽다는 친구의 말은  자기 비하에 가까운 발언이었다.

 

여름과 가을 즈음에는 그 친구가 자꾸 어디가 아팠다.

코시국에 열이 올라도 응급실도 못가니 집에서만 여러번 끙끙 앓았다.

그런 친구에게 우스개소리로 "너 비행기를 안타서 자꾸 아픈 것 같아." 라고 했을 땐 분명 맞다. 그렇다. 대답했는데 이젠 비행기도 필요 없다고 했다.

"너에겐 높은 고도가 필요해. 등산을 해!" 라고 친구가 가장 싫어하는 걸 들이밀어도 이젠 아이젠을 샀다고 대답을 한다. 정말 등산을 한다고.

 

이쯤 되면 정말 자신의 우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발악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.

 

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삶에 책임 질 것이 본인밖에 없는 내 친구의 환경은 나쁠게 없다.

직장도 안정적이고, 의식주에서도 아쉬울 것이 없다.

단지 본인의 성향과 지금 사회의 모습이 극과 극처럼 다른 것 말고는 

 

하지만, 바로 그 부분이 사람을 미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.

인간의 자유 의지가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사회.

코로나라는 지배자에게 힘도 못쓰고 복종해야 하는 독재 정권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.

 

물론, 아닌 사람도 충분히 많지만 적어도 내 친구에게는 지금 이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된 것이다.

 

하루에도 수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 이젠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레드, 코로나 블랙까지 언급되는 사회이다.

그만큼 심각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친구에게 특별한 말을 해주지는 못했다.

 

한계치에 다 다른 것 같아.

잠깐 즐거워도 그게 하루의 즐거움을 다 땡겨서 쓴 것 같아서 그 후가 너무 공허해.

 

그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.

 

"다들 그런 멘탈 부여잡고 사는거야. 다들 그래."

 

이런 말 밖에 해주지 못했다.

이 말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뉘앙스가 있어 조금 조심스러웠다.

 

다들 그러고 사는데 넌 뭐가 그렇게 예민해? 별나게 굴지마.

한창 예민한 친구가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까 조금 걱정됐다. 다행히 아니었지만.

 

내 친구에게도, 지금 쓰는 이 글에도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.

 

우리는 사실, 언제나 자신의 행복을 향해 치열하게 산다.

내 친구는 그 계기가 코로나가 되었을 뿐이고,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계기가 삶을 치열하게 만든다.

 

그러니, 난 다음이 와도 친구에게 비슷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.

 

다들 그렇게 살아. 그러니까 괜찮아.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. 그냥 보통인거야.

 

라고.

 

 

오전 8시경. 비행운을 가득 매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던 비행기. 그 날이 어서 오기를.

 


 

▶ 코로나 블루 :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든 외부활동과 타인과 교류 등으로 인한 가벼운 우울증 또는 우울증 전 단계.

코로나 레드 : 코로나 블루의 우울감을 넘어 짜증과 분노 반응이 발생하는 단계.

▶ 코로나 블랙 : 우울증 단계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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